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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광장] 오월이 우리에게 건네는 이야기

“파-란 하늘 아래 언덕에서 우리들이 즐겁게 노래부르면 하늘을 포르르 날아가는 종달새들도 좋아라 노래부른다.”   어린 시절 입가에 맴돌던 이 동요 가락이 백수를 바라보는 나이에도 문득 귓가에 생생하게 다가온다. 5월의 푸른 하늘 아래, 언덕 위에서 뛰놀던 기억과 함께 떠오르는 이 맑은 노랫소리는 울긋불긋 만개한 온갖 꽃들과 힘차게 비상하는 바다새들처럼 아름답고 활기찬 삶에 대한 갈망을 일깨운다. 비록 작금의 국정 혼란으로 마음 한편이 무거운 것은 사실이나, 그렇다고 찬란하게 도래한 이 아름다운 5월을 외면하고 침묵할 수만은 없다. 어쩌면 이 계절의 아름다움 속에서 우리는 복잡한 현실을 잠시 잊고 희망을 노래할 힘을 얻는 것인지도 모른다.   어느덧 하얀 은방울꽃이 소담스럽게 피어나는 5월이 우리 곁에 다가왔다. 한 해의 다섯 번째 달인 5월(May)의 어원은 ‘인생의 봄’ 또는 ‘봄꽃을 따다’라는 뜻을 지녔다. 그 이름이 말해주듯, 5월은 그 자체로 봄날의 절정이며 아름다움의 상징이니, 어찌 이를 노래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5월은 푸름의 계절이다. 눈 시리도록 맑은 하늘도, 생명력 가득한 땅도, 넘실거리는 바다도 온통 푸른빛이다. 이 생동하는 푸른 5월은 새싹처럼 피어나는 어린이들의 세상인 동시에, 넉넉하고 포근한 어머니의 사랑을 기리는 달이다.   5월의 아름다움은 시각뿐 아니라 청각으로도 다가온다. 청아하게 지저귀는 새소리, 만개한 꽃들의 향연, 그리고 화사하게 단장한 이들의 모습까지. 이 아름다운 계절에 문득 잊히지 않는 이름 하나가 떠오른다. 바로 ‘메이플라워(Mayflower)’이다. 5월에 피는 꽃 이름이기도 하지만, 우리에게는 신앙의 자유를 찾아 신대륙으로 향했던 이들의 배 이름으로 더욱 친숙하다. 이 배에 올랐던 신앙 선조들이 먼 훗날 조선 땅에 복음을 전한 선교사들의 뿌리가 되었다는 점에서, 메이플라워는 우리 기독교인들에게 더욱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   이처럼 아름답고 의미 깊은 5월에는 역사 속 수많은 인물들이 태어나고, 굵직한 사건들이 벌어지기도 했다. 특히 한국 근현대사에서 5월은 어떤 발자취를 새겼을까. 한국 최초의 아동문학가이자 ‘어린이‘라는 존칭을 처음 사용한 방정환 선생은 1922년 5월 1일을 ‘어린이날’로 정하며 이 땅의 아이들에게 희망과 꿈을 선물했다. 그의 뜻을 기리며 이때부터 매년 5월 5일은 온 국민이 어린이를 기념하는 날이 됐다. 또한 한국 최초의 예술가곡으로 평가받는 ‘봉숭아’를 작곡한 홍난파 선생은 이 곡을 발표한 지 4년 뒤인 1924년 5월, 중앙기독교회관에서 직접 바이올린 연주로 대중에게 아름다운 선율을 선보였다.   5월의 정취는 예술을 통해서도 깊어진다. 문득 요하네스 브람스의 자장가 선율이 귓가에 맴돌았다. “잘 자라 내 아기 내 귀여운 아기, 아름다운 장미꽃 너를 둘러 피었네. 잘 자라 내 아기 밤새 편히 쉬고, 아침에 창 앞에 찾아올 때까지.”   5월에 태어난 세계적인 음악가들을 떠올려본다. 서양 음악사의 거장으로 꼽히는 바흐, 모차르트, 베토벤, 바그너의 이름은 물론, 그들보다 후대에 활동한 독일의 요하네스 브람스가 1833년 5월 7일에 태어났고, 놀랍게도 러시아 음악의 위대한 별 피터 차이콥스키 역시 1840년 같은 날에 세상의 빛을 봤다. 이 외에도 ‘갓 블레스 아메리카’를 만든 어빙 벌린(1888년 5월 11일, 미국) 등 5월은 음악사에 길이 남을 위대한 이름들을 많이 품고 있다. 윤경중 / 연세목회자회 증경회장열린광장 이야기 요하네스 브람스 서양 음악사 이름 하나

2025-05-12

[열린광장] 오늘, 나는 그 길을 걸었다

소포가 왔다. 웬만한 용무는 이메일로 주고받는 세상에, 보내는 이와 받는 이의 이름을 또렷한 손 글씨로 적은 소포였기에 더 반가웠다.     그 안에는 두툼한 책 한 권이 들어 있었다. 뉴욕에서 사역하는 선배 목사가 보낸 책이었다. 40년 넘게 목회하면서 매주 정성껏 빚어낸 설교문을 하루 한 편씩 묵상할 수 있도록 정리한 책이었다.   저자는 서문에서 30분 설교문을 300자로 요약했다며, 서두르지 말고 숨을 고르며 천천히 읽어달라고 당부했다. 저자의 친절한 조언도 잠시, 책을 받자마자 단숨에 끝까지 읽어 내려갔다. 책 속에 녹아있는 이민 목회 현장의 생생한 소리, 신앙인의 깊은 고뇌가 책을 덮지 못하게 했다.   책 속에서 잊고 있었던 이름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랠프 애버내시(Ralph Abernathy)였다. 그는 마틴 루서 킹 목사와 함께 흑인 인권 운동의 최전선에서 싸웠던 인물이다. 킹 목사와 함께 17번이나 감옥에 투옥되었고, 셀마 행진에도 동행했던 그였다. 킹 목사가 암살당하기 전날 밤에는 멤피스의 한 모텔에서 바로 옆방에 머물렀으며, 총에 맞아 쓰러진 킹 목사를 부둥켜안고 병원까지 갔던 이도 애버내시였다.   한때 그는 흑인 인권 운동의 대부로 불렸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그의 이름은 점차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혀졌다. 함께 싸웠던 동지들 중에는 UN 대사나 애틀란타 시장이 된 이도 있었지만, 그를 기억하는 이는 드물었다.   그럼에도 그는 흔들리지 않았다. 명예나 박수갈채가 아닌, 오직 소명에 충실한 길을 걸었다. 그 삶의 진가는 조용히 흘러가는 일상에서 드러날 뿐이었다.   얼마 전 애틀랜타를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킹 목사 박물관을 찾아 애버내시의 흔적을 살펴보려 했지만, 박물관은 리모델링을 한다며 문이 닫혀 있었다. 실망스러운 마음에 인터넷을 검색하니, 애틀랜타 다운타운을 지나는 프리웨이에 그의 이름이 붙어 있고, 또 차로 한 시간쯤 떨어진 지역에도 그의 이름을 딴 도로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그것뿐이었다. 교통편도 마땅치 않았고, 그의 이름이 붙은 길을 지나간다고 해서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은 생각에 마음을 접었다.   집에 돌아와서 ‘그냥 한번 가볼 걸’하는 아쉬움이 맴돌던 어느 날, 그의 이름을 다시 검색해 보았다. 그 순간, 믿기 힘든 사실과 마주했다. 그의 이름이 붙은 길이 바로 교회 옆에 있었다. 신호등 하나만 건너면 닿는 거리. 걸어서 5분도 채 걸리지 않는 곳에 그토록 멀리서 찾던 길이 사실은 바로 곁에 있었던 것이다.     오늘, 나는 그 길을 걸었다. 애버내시의 이름이 새겨진 도로를, 햇살이 드리우고, 들풀이 바람에 흔들리는 인도를 천천히 걸으며 문득 깨달았다. 행복과 진리, 사랑과 은혜는 늘 가까이에 있었다는 것을. 다만 내가 보지 못했을 뿐이지 길은 멀리 있지 않았다는 것을. 필요한 건 주위를 먼저 살피는 것이었다는 것을.   애버내시의 묘비에는 이런 글귀가 적혀 있다고 한다. ‘I Tried(나는 한번 해 봤다)’.   비록 큰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지만, 무대의 주인공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한번 해 봤다는 그의 진솔한 고백과 겸손한 헌신이 깃든 발자취가 그의 이름이 새겨진 길 위에서 조용하지만 찬란히 빛나고 있었다.  이창민 / 목사·LA연합감리교회열린광장 목사 박물관 이의 이름 이름 하나

2025-04-29

[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누군가의 이름을 부른다는 것

누군가의 이름을 부른다는 것   목련이, 개나리가 피고 홍매화 꽃눈 방울처럼 달렸습니다 봄 하늘 바라보다 눈물이 맺힙니다 수척해진 얼굴, 내 탓만 같아 미안했습니다 애간장 아랑곳 없이 봄은 늦게, 느리게 오고 있습니다     당신을 알게 된 호수는 아름다워 닿을 수 없는 그곳엔 종일 달빛 마음 출렁이고 예상 못한 일들, 바람 불듯 일어나기도 하고 꽃 지듯 사라지기도 하였지요 푸른 호수와 푸른 하늘이 붙어버린 저녁 서로의 안부를 묻기엔 너무 멀리 흘렀나 봅니다     꽃 지듯, 나뭇잎 떨어지듯, 아무 일도 없었듯이 세월 지나 덤덤히 목련이 피고   목련이 떨어질 즈음 나도 없겠지요   살다 보면 눈물이 마르도록 어제는 오늘이 되고   오늘은 내일이 되어 있을 터이니   안국역으로 돌아가는 발길이 차마 무겁습니다   별이 무수리 떨어져 안기는 밤 멀리서 바퀴 소리가 나를 지나쳐 웁니다     하루의 수고를 위로하듯 서쪽하늘의 노을은 아름답기만 합니다. 쉼 없이 이어지는 분주함 속에서 저녁 한때 깊숙히 의자에 몸을 맡긴 채 고요히 내려앉는 석양을 바라보고 있자면 어느새 내 마음에도 서서히 노을이 지고 고요가 잠겨옵니다.   하늘 빛이 옅은 붉은빛으로 변해가다 어느 사이 하늘은 옅은 보라빛을 띠기 시작합니다. 이때 나뭇가지 사이로 비쳐오는 노을 빛은 천상의 색입니다. 사람이 만들어낼 수 없는 신비한 빛입니다. 노을빛에 마음을 빼앗기다 보면 귀에 가득했던 분주한 소리들이 하나 둘 지워지고 이제 들리는 소리는 거의 없습니다. 보금자리 찿아 날갯짓을 펴는 새들의 노래가 간간이 들려오고 바람에 젖는 풀들의 나즈막한 속삭임이 들립니다. 나는 지금 표현할 수 없는 신비한 고요 속에 있습니다. 먼곳에서 졸리운 듯 들리는 자동차 달리는 소리며, 내 안에 흙탕물이 서서히 침잠하는 고요 속에서 사과꽃 향기를 맡을 수 있는 시간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위로가 됩니다.     높아지기에 턱없이 작은 우리이기에 오히려 낮아지는 동작에 더 마음을 기울여야 합니다. 더 깊어지기 위해 넘어짐과 상처와 경솔함에 대한 성찰이 필요합니다. 같은 일을 반복해서 실수하는 오류를 범하지 않기 위해 나를 향한 용서가 우선되야합니다. 그런 후에야 아름다운 것을 아름답다고 말할 수 있게 될 테니까요. 바로 내 앞에 펼쳐져 있는 노을이 유독 아름답게 느껴지는 이유가 되기도 합니다.   누군가의 이름을 부른다는 것은 가슴 떨리는 일입니다. 언제 그 이름이 내 마음에 새겨졌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그의 이름을 부르고 있습니다. 내 안에 들어와 시간과 환경과 풍경이 바뀔 때마다 그 이름은 풍선처럼 내속을 꽉 채우고 있습니다. 그런 이름 하나 품고 노을 속으로 깊어 가자면 나뭇가지 사이 반짝 보이는 얼굴과 바람에 실려온 반가운 목소리를 놓치지 않으렵니다. 작은 가슴에 다 담을 수 없는 미어지는 아픔을 행복이라고 아직 말하고 싶습니다. (시인, 화가)     신호철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이름 이름 하나 달빛 마음 바퀴 소리

2023-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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